업무개시명령 vs 삭발투쟁…정부·화물연대 강대강 ‘상황급랭’
업무개시명령 vs 삭발투쟁…정부·화물연대 강대강 ‘상황급랭’
  • 김현식 기자
  • 승인 2022.11.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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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총파업) 6일째를 맞은 29일 정부가 시멘트분야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자 화물연대가 삭발투쟁으로 맞대응 하는 강대강의 대치가 빚어지며 상황이 급랭하고 있다.

또 파업이 계속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운송 차질이 발생하고 레미콘공장 가동과 아파트 건설현장 공사가 중단되며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레미콘 업계 피해액만 전날 기준으로 64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일부지역에서는 운송중인 트레일러에 쇠구슬이 날아들고 비조합원 차량에 라이터를 던지는 등 시위 양상도 과격해지고 있다.

◇정부, 시멘트분야 업무개시명령 발동…“법치주의로 노사 문제 해결”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하고 “정부는 우리 민생과 국가 경제에서 초래될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해 부득이 시멘트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도 국토부, 지자체, 경찰 합동으로 76개 조사팀을 구성해 전국 약 200여개 시멘트 운송업체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현장조사를 통해 해당 운송업체와 거래하는 화물차주의 명단, 주소를 파악하고, 화물차주의 실제 운송 여부, 운송거부 현황을 확인한다.

운송업체 차원에서 운송을 거부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해당 운송업체에 1차적으로 업무개시명령서를 전달하고 운송거부가 확인된 화물차주가 있을 경우 해당 화물차주의 주소지로 업무개시명령서를 송달할 예정이다.

현장조사 과정에서 집단운송거부에 참여하는 화물차가 확인되는 경우 번호판 확인 및 추가조사를 실시해 해당 화물차주의 성명, 주소를 확인한 후 업무개시명령서를 송달할 예정이다.

◇화물연대, 전국 곳곳서 삭발투쟁…“계엄령 선포”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화물연대는 계엄령 선포로 규정하고 삭발투쟁으로 맞대응하며 강경 투쟁을 천명했다.

화물연대는 29일 성명을 통해 “화물노동자에게 계엄령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를 규탄한다”며 “우리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 없이 치솟는 원가와 유가를 감당하고자 밤새 달리는 화물노동자는 ‘구조적 재난 상황’에 놓여있지만 그곳에 정부는 없었다”며 “오히려 이번에도 이들에게 '귀족노조' 프레임을 씌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업무개시명령은 화물노동자에게는 계엄령에 준하는 명령”이라며 “정부는 생계를 볼모로 목줄을 쥐고, 화물노동자의 기본권을 제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파업에 대한 제재로 행해지는 강제근로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기본원칙과 핵심협약(29호, 105호)에서 분명하게 금지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는 '법과 원칙'의 잣대를 일관되게 적용하고 업무개시명령 엄포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발동 직후 서울경기, 인천, 대구·경북, 전북, 제주, 대전, 광주 등 전국 각지부는 결의대회를 갖고 삭발 투쟁식을 진행했다.

◇멈춰 선 레미콘 공장·아파트 건설현장 ‘피해 눈덩이’

파업이 6일째를 맞으며 전국 곳곳에서 레미콘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아파트 건설현장이 멈춰서며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청주시에서는 착공계가 접수된 공동주택 건설현장 13곳 가운데 골조공사가 한창인 봉명1구역 재건축(SK뷰자이·1745세대), 복대2구역 재개발(더샵청주센트럴·986세대), 오창읍 각리(반도유보라·572세대) 등 현장 3곳이 멈춰 섰다.

대구에서는 레미콘(콘크리트)의 주원료인 시멘트 출하가 1주일째 끊기면서 지역의 레미콘공장 21곳 중 1~2곳을 제외하고 이날부터 공장 가동을 멈췄다. 레미콘(콘크리트)이 투입돼야 하는 골조공사가 진행 중인 대구지역 아파트 건설현장이 159곳이나 돼 피해규모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28일 기준으로 132개 레미콘 공장 중 35곳이 가동을 멈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추가 집계는 되지 않았으나,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레미콘 공장들도 시멘트 보유량이 거의 소진돼 하루내지 이틀(30~31일) 뒤면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강원도레미콘협동조합 관계자는 “내일 모레 안에 도내 레미콘 공장이 보유한 재고가 바닥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각 회사별로 정말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강원도에 따르면 이번 파업으로 도내 시멘트 하루 출하량은 파업 전 7만5000톤에서 현재 4만톤으로 급감했다.

시멘트업계 전체 출하량도 28일 기준 2만2000톤으로 성수기 하루 20만톤의 11% 수준에 그쳤다. 시멘트 성수기는 9월부터 12월 초까지다.

협회는 28일 하루 피해액을 178억원으로 추산했다. 파업 첫날인 지난 24일부터 5일째(28일)까지 누적 피해액은 642억원에 달한다.

레미콘 타설이 중단되면서 20개 건설사의 전국 912개 건설현장 등 508개(56%) 현장도 멈춰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트레일러에 쇠구슬·라이터 투척…과격해지는 시위

부산신항에서 정상 운행 중인 트레일러에 쇠구슬이 날아와 차량 앞 유리가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해 29일 경찰이 화물연대를 압수수색했다.

부산강서경찰서는 이날 오전 사건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차량과 화물연대 한 지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범행에 이용된 쇠구슬과 운행일지를 확보했다.

앞서 지난 26일 오전 부산신항에서 정상 운행 중인 트레일러 2대에 쇠구슬이 날아와 각 차량의 앞 유리가 파손됐다. 비조합원 운전자 1명이 목 부위를 다치는 경상을 입었다.

또 부산강서경찰서는 이날 오전 10시50분쯤 부산신항 선원회관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 A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B와 C씨를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비노조원의 트레일러 앞유리에 라이터를 던진 혐의를 받고 있다. B와 C씨는 이 과정에 합세해 A씨의 체포를 방해하고 경찰을 향해 물병을 던지며 폭행한 혐의를 받아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체포 과정에서 경찰과 노조원의 몸싸움이 발생해 경찰관 2명이 경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 27일 오후에는 부산 신선대 부두에서 트레일러 앞 유리에 계란이 날아왔다는 비조합원의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경찰은 현재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노조원의 불법행위 9건(15명)을 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