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정 칼럼> 댄스는 무언(無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권순정 칼럼> 댄스는 무언(無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 권순정 교수
  • 승인 2022.08.0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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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정 동서울대 외래교수
권순정 동서울대 외래교수

얼마 전 한 지인이 이제 서서히 여가생활도 하고 운동도 좀 해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3년 동안 COVID19로 인해서 많은 활동들이 제한되어왔기에 더 선택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당연히 ‘춤’을 권했다. 음악도 듣고 전신운동이며 특히 나이 든 사람에게 그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기 때문이다.

춤, 노래는 유쾌한 가무로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오락이자 여가생활에 있어서 가장 유쾌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전 노래는 많은 노래방의 등장으로 전 국민의 가수화가 되었으며, 노래교실, 음치클리닉 등 대중 속에 밝고 건강한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으나, 춤을 전공한 필자로서 여기서 좀 아쉬운 것은 춤 흔히 댄스라 불리어지는 이 분야는 아직도 부정적 인식과 편견의 잔재가 남아 있어 좀 아쉬운 생각이 있다. 이는 춤이 처음 우리나라에 유입될 때부터 음지로 파고 들어온 것이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특히 다른 춤보다도 댄스스포츠, 사교댄스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단어를 열거할 때 제비, 시장바구니, 춤바람 등 부정적 단어가 연상될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데는 박인수 사건이나 정비석의 ‘자유부인’ 또한 한몫을 더했다.

그러나 춤이란 신체적 건강과 정서적 안정뿐 아니라 움직임을 통하여 미적인 요소와 함께 상대방을 존중하며 예의를 배울 수 있고 인간관계를 정립시킬 수 있는 예술적 스포츠다. 그러기에 인간 문화중심의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오늘날 생활스포츠 여가 스포츠로 다양한 종류의 춤(댄스)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춤(댄스)중 커플댄스는 남녀노소 누구나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때 Shall We dance가 제목에 맞게 많은 이들에게 춤을 권했다. 특히 여자의 전유물로 생각했던 춤의 세계에 남성들의 관심이 몰렸다.

당시 필자에게도 한 남성분이 찾아온 적이 있다. 자신의 어릴 적 로망이 춤을 배우고 추는 거라며 그분 역시 Shall We dance 영화를 보고 오셨다는 말을 했다. “영화의 주인공 스기야마는 40대인 것 같은데 50이 훌쩍 넘은 제가 배울 수 있을까요?”

라는 첫 질문을 시작으로 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배움도 잠시! 조용하고 집 밖을 모르는 아내의 반대로 끝내 그분은 춤을 그만두셨다. 계속해서 같이 배우자고 할수록 트러블만 생길 뿐이었다.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남성분이 그만두셨던 일이 있었다.

이런 일로 한동안은 춤을 누군가에게 권하지 못했다. 춤이란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문화였다.

다른 것은 선진문화를 그리도 잘 쫓아가고 따라 하지 못해 안달을 부리지만 춤이라는 문화는 여전히 우리에게는 그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문화이다.

누군가에게 ‘로망’이 누군가에게는 ‘노망’ 일 수 있다. 이거 역시 생각이 다름일 뿐이다.

무엇을 하든 그것을 하는 주체가 문제이지 도구가 문제일 수 없다. 그러기에 오늘도 운동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지인의 물음에 ‘춤’을 여전히 권하고 있다. 여행은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닌 가슴이 떨릴 때 가는 거라 한다. 무엇이든 다 때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