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분노, 자괴...그리고 ‘잔인한 4월’
희망, 분노, 자괴...그리고 ‘잔인한 4월’
  • 정연무 기자
  • 승인 2014.04.26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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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엄마 아빠 왔잖아, 대답 좀 해봐!”
바람이 진도 앞 바다 쪽에서 불어옵니다.
바다 속에 갇힌 아이들의 마지막 기별일까....
통곡 소리가 들립니다. “거기 있는 거니? 내 새끼...얼마나 추울까.”
눈물도 말라버린 부모들은 “내 새끼 한번만 안아보고 싶다.”며 통곡 합니다
혹시나 하는 절박한 희망으로 하루를 맞는 이 땅의 어른들이 ‘자괴감’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잔인한4월’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맑고 해사한 얼굴로 그저 들뜬 여행을 떠난 우리의 열일곱 살의 아이들에게 사월의 바다는 너무 깊고 무섭습니다. 하나하나 빛이 되어 이 땅에 보내진 존귀한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 저 배 그늘 밑에 매달려 있습니다.
 
피로 쓴 듯 붉게 들려오는 살려 달라는 외침에 이 땅의 죄 많은 어른들은 아무 응답조차 못한 채 우리의 아이들을 저 침묵과 어둠 속에 며칠째 홀로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선 자리는 아이들이 매달려있는 저 배 그늘 밑에 함께 달리지도 못한 채 멀리서 가라앉는 절망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죄인의 자리일 뿐입니다.
 
무책임하고, 몰염치하고 비겁한 어른들 때문에 꽃다운 우리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에 있습니다.
잔인한 4월, 배 그늘 밑 떨어지는 핏물과 눈물을 보며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통곡과 탄식, 그리고 무력한 기도뿐입니다
 
운항이 불가능한 짙은 안개에 고작 돈 벌이를 이유로 출항을 강행하고야만 몰염치한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심이었습니다.
 
책임감은 두더라도 비상 구호조차 외면한 채 ‘나 홀로 탈출’을 감행한 몰지각한 선장이, 비상대피 매뉴얼조차 숙지 못한 채 구조 역할마저 외면한 파렴치한승무원들이 모두 이 땅의 어른들입니다.
 
안전 불감증과 총체적이고 관행적인 타락으로 참사를 방조한 정부에도 어른들로 꽉 차 있습니다.
낡은 배를 사드린 것도 모자라 안전 점검마저 회피한 운항회사는 돈벌이를 위해 안전 따위는 안중에 없던 부패에 물들여진 어른들입니다.
 
이 땅의 어른들이 몰지각과 몰염치와 이기와 허영으로 똘똘 뭉쳐 차가운 바다 속으로 그것도 우리의 아이들을 내 팽겨 쳐버렸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없어졌습니다.
미친듯 바닥에 앉아 중얼거리는 사람들...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밤새도록 통곡하는  사람들... 하나도 정상적인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이미 죄인은 고개를 든 채 걸을 수가 없습니다. 발걸음을 옮기면 중심이 흐리고, 중요사건과의 약속을 잊었으며, 목적지를 지나쳐 되돌아가는 일이 반복되고, 오랜 지인들마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일들이 계속됩니다. 그렇게 멍하니 일상을 보내는 동안에 차가운 바다 속에 갇혀 서서히 숨져갔을 아이들의 원성이 들려옵니다.
 
답할 수 없는 어떠한 것도 가지지 못한 무력감에 자신을 분노하면서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자괴감’에 처음으로 기자(記者)가 된 것을 후회합니다.
이것마저 사치이지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의 바램도, 부모들의 혼을 다한 외침도 다다를 수 없는 저 어둠의 바다 속 우리 아이들을 추위와 두려움에서 따뜻하게 안아 주시옵소서. 그래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우리의 딸들을, 귀한 이 땅의 아들들을 저 무서운 곳으로부터 건져 주시옵고.
크고 강한 기적으로 아이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엄마 아빠를 부르는 아이들의 울부짖음에 답하게 하여 주시고 아이들을 구하는 수많은 손길이 아이들이 갇힌 곳에 속히 다다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 생명도 잃지 않고 우리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 그러하듯 아이들 또한 끝내 소망을 붙들고 저 힘겨운 시간을 견뎌 낼 수 있도록 희망을 주시옵소서.“

 
너무나 힘들어 서서히 희망의 끈을 놓으려하는 이 땅의 부모들이 아들과 딸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도 바다 쪽에선 기별이 없습니다. 부모들은 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처럼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눈물은 그들의 호흡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가슴에 묻었고, 이제야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한심하고 무능하며 질이 나쁜 어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